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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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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문화재 야행을 보다

부산은 품이 너르다. 왜 그런가. 바다와 육지 한가운데 있는 까닭이다. 한쪽은 해양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한쪽은 내륙의 기운을 받아들여 속이 탁 트인 도시, 부산. 부산사람의 시원시원하고 선 굵은 기질이 곧 부산의 기질이다.

부산의 기질은 한국전쟁 와중에 진가가 드러났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피란민을 죄다 받아들였다. 오갈 데 없는 피란민을 보듬었으며 피란민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부산은 그들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1,023일의 역사.’ 피란수도 부산 문화재 야행은 한 시절을 되돌아보는 여정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그해부터 1953년까지, 정확하게는 1,023일 동안의 부산을 되돌아보는 여정이며 부산의 애환을 되돌아보는 여정이다.

1,023일 동안 부산은 한국의 수도였다. 한국의 중심이었으며 세계의 중심이었다. 세계의 중심이라니 “설마?” 그러겠지만 사실이다. 한국전쟁 기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곳이 부산이었다.

유엔군만 전 세계 열여섯 나라에서 참전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피란수도 부산의 중심은 서구 일대였다. 서구와 맞닿은 중구도 중심권에 해당한다. 서구는 주로 공공의 공간이었고 중구는 주로 일상의 공간이었다. 대통령 관저와 정부청사, 국회 의사당 등이 서구에 있었고 국제시장과 보수동 책방골목, 눈물의 40계단 등이 지금도 중구에 있다.

그러나 어찌 서구와 중구만 중심이랴. 부산 곳곳이 피란지였기에 부산 곳곳이 피란수도의 중심이었다. 판잣집이 닥지닥지 들어선 산복도로와 동천이며 국립의료원의 토대가 된 스웨덴 야전병원과 포로수용소가 있던 서면이며 피란수도 부산은 피란지 아닌 곳이 없었으며 애환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피란수도 부산 문화재 야행은 겉만 훑는 여행이 아니다. 추억 여행은 더욱 아니다. 서구 어디 어디도 가 보고 중구 어디 어디도 가 보고 또 부산 어디 어디도 가 보고 그러고는 끝나는 여행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러기엔 그 시절이 너무 무겁고 그러기엔 그 시절을 온몸으로 견뎌낸 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우리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 우리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피란민일 수도 있고 원주민일 수도 있는 그들은 공존하며 공감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갔다. 기댈 데라곤 없던 피란민에게 원주민은 기꺼이 기둥이 됐으며 원주민이 대부분이던 부산에 피란민은 역동의 새로운 기운이었다.

이참에 부산은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 피란수도 부산은 한국의 마지막 보루였다. 부산이 무너지면 한국이 무너졌다. 그러기에 부산은 고마운 도시고 일부러라도 들러봐야 할 도시다. 부산에 오시는 그대, 부산 경계에 들어서는 순간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개 한 번 숙여 달라. 옆에 누가 있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으면 눈 한 번 지그시 감아 달라.

부산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품이 너르기에 가진 것을 아끼지 않고 내놓았다. 전쟁이 나기 전 부산은 물빛 반짝이는 생태도시였고 풀빛 파릇한 전원도시였다. 전쟁은 부산을 일순간에 확 바꾸었지만 부산사람이 그랬듯 부산은 더 주지 못해 미안해했다. 부산을 보는 눈빛이 순해야 하는 이유고 부산을 대하는 마음 빛이 선해야 하는 이유다.

부산은 달빛이 맑고 밝은 도시다. 달이 뜨면 해운대 바다가 반짝이고 광안리 바다가 반짝이고 송도 바다가 반짝인다. 천 군데 강물에 비치는 달빛을 보고 월인천강지곡을 지었듯 천 군데 바다에 달빛 비치는 월인천해의 도시, 부산. 2021 피란수도 부산 문화재 야행에 나선 그대! 그대도 지어 보시라. 달빛 은은한 월인천해지곡의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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